가치에 대한 믿음

죽음 본능에 대한 프로이트의 이야기가 옳다고 할때, 아쉬움 없이 죽기 위해 우리가 준비 해야 할 것은 어떤 것일까? 미련이 남지 않도록 죽어라 무언가를 이뤄내는 것? 아니면 오랫동안 기억될 강렬한 흔적을 세상에 남기는 것? 아니면 보다 본능에 가깝게 자신의-인간의 유전정보가 계속 이어지도록 자손을 남기는 것?(웃음)

어떤 형태간에, 우리의 보다 무의식의 가까운 영역에서, 이렇게 태어나서 죽어버리는 삶이 덧없지 않다는, 충분히 “가치” 있다고 납득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한다). 여러 성장과정과 환경에 따라 그런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어떤 형태로 이룰 것인가는 각각의 사정이겠지만.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노력한다 따위의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상당 경우 빗나가 버릴 것이다. 노력을 해버렸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고 간주해버린다. 그렇게 믿어 버린다.

우리의 약하디 약한 이성은 노력에 대한 댓가를 얻지 못하는 것을 견뎌내질 못한다. Give and Take 라던가 뿌린 만큼 거둔다 따위의 격언이 모든 사회, 모든 시대에 강조되는 이유가, 사회적 구조상 실현이 한없이 어렵기에 그리고 보상 받지 못하는 노력을 참아낼 수 없는 우리 마음에 위로를 위해서가 아닐까

어쨋든 가치 없는 것에 전력투구 해버리고, 자신의 헛수고를 차마 인정치 못한채, 보상받지 못하는 이유를 자신의 노력 부족으로 돌리면서 더더욱 열심히 헛수고를 하다가 장렬하게 산화해버리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사회가 발전할수록 더욱 다양하게 그리고 강렬하게 헛수고의 가속도에 파묻혀가는 모습은 희극적이랄까 비극적이랄까

재미있지않은가? 그 가치에 종교라고 적어도 좋고, 연애라 적어도 좋고, 돈, 명예 등등 모든 밝고 빛나는 “더럽게” 훌륭한 단어들로 바꿔 적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니까 생각해보자. 내가 그렇게 필사의 노력으로 이루고자 했던게, 어느 순간 노력 그 자체에 덮여버린 아지랑이 같은게 아니었는가. 혹시 그렇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자. 의식과 무의식이 합심해서 감출정도로 치명적이고 강력한 공포를 정면으로 보고, 그것을 견딜수 있는 이성을 갖추어, 자신의 헛수고를 담담히 인정하자.

그저 이렇게 주절거리는 누군가처럼, 받아들이기에 너무도 많은 헛수고를 감내하는데 모든것을 쏟아, 그 노력이 신앙이 되어버리지는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래도 아직 안심하고 죽을 수 있을 무언가는 남기지 못했으니, 조금은 더 열심히 살아남아보자

by L_Psyfer | 2009/10/14 06:49 | 상아탑 | 트랙백 | 덧글(0)

적어도 지금은 할 수 없는 것들

짜증을 못참고 난장판 벌이기.

큰 대로변에서 목이 쉴때까지 노래 부르기.

마음에 안드는 녀석 관자놀이를 노리는 레프트 스트레이트.

이야기가 통하는 녀석들과 날이 세도록 술마시기.

지갑과 옷가지만 챙기고 여행가기.

여권 신청을 하고 해외로.

서점에서 원없이 책을 사기.

그리고 미련 없이 포기하기

by L_Psyfer | 2009/09/30 02:49 | 잡담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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